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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공개경쟁임용시험 한국사 문제 이의 제기

  • 작성자박병천
  • 작성일2010-10-14
  • 조회3,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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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의제기할 문제

조선시대 사회시설에 대한 설명으로 틀린 지문을 찾는 문제(문제 비공개로 정확한 문제번호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2. 이의내용

지문 4번은 "동서대비원에서 여행자와 유랑자의 수용과 구휼을 담당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맞는 지문으로 보입니다.

동서대비원은 이후 동서활인원, 동서활인서로 명칭을 바꾸면서 같은 기능을 하였다고 각종 자료에 나와 있습니다.

다음 지문 3번 제생원은 지방민의 구호와 진료뿐아니라 서울 서민의 구호와 진료도 맡았습니다. 이후 혜민국 통합되기도 하였습니다.

문제의 정답은 특정 교과서만을 기초로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검토 부탁드립니다.

3. 근거자료

가. 네이버 백과사전


대비원 [大悲院]

요약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구료기관(救療機關).

구분 구료기관
설립연도 1049년
소재지 한국 개경(현재의 개성)
설립목적 의료 구제
주요활동 병자·굶주린 사람이나 행려자를 치료하고 음식과 의복 제공


본문
대비원은 일종의 국립 의료기관으로, 고려시대에는 개경의 동쪽과 서쪽 두 곳에 있었다고 하여 보통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이라고 불렸다. 그렇지만 사실은 서경(西京)에도 분사(分司)가 설치되어 있었다.

개경의 경우 1036(정종 2) 11월에 “동대비원(東大悲院)을 수리하여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살게 하고는 옷 입히고 밥 먹여 주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이미 그 이전에 설치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는 사(使), 부사(副使), 녹사(錄事) 등의 관리가 배치되어 일을 맡아 보았다. 대비원은 의료사업과 함께 의탁할 곳이 없는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구제기관으로서도 큰 몫을 담당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다음에도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동서소문(東西小門) 밖에 각각 대비원을 설치하고, 부사(副使) 1명, 녹사(錄事) 2명과 의원과 무당을 배치하여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대비원에서는 서울 안에 거주하는 병들고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을 모두 이곳에 모아 놓고 죽이나 밥과 국 등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필요한 약재를 주었다. 아울러 옷과 이부자리를 주어 편하도록 보호해 주었고, 만일 죽는 이가 있으면 잘 묻어 주었다.

1414년(태종 14)에 동서활인원(東西活人院)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466년(세조 12)에 다시 활인서(活人署)로 고쳤다. 그러다가 1885년(고종 22)에 활인서는 혜민서(惠民署)와 함께 혁파되고, 그 재원(財源)은 장로교 선교사 알렌(Horace N. Allen)이 재동(齋洞)에 개설한 광혜원(廣惠院=濟衆院)의 재원으로 충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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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음 백과사전

제생원

조선 초기에 설치된 의료기관.
일반 백성의 질병 치료와 구호사업, 의녀(醫女) 양성, 향약재(鄕藥材) 수납, 향약에 관한 의학서 편찬 등의 의료사업을 수행한 기관이었다. 1397년(태조 6)에 좌정승 조준(趙浚)과 우정승 김사형(金士衡)의 건의로 설치되었다. 혜민국(惠民局)과 같이 각 도에서 매년 올라오는 향약을 수납하게 했고, 1398년에는 고려말부터 사용되어 오던 향약방서(鄕藥方書)에 경험방(經驗方)을 모아 〈향약제생집성방 鄕藥濟生集成方〉 30권을 편찬하게 했다. 1401년(태종 1)에는 환자의 존귀 여부를 가리지 않고 왕진하여 치료하도록 했고, 1405년에는 병들어 오갈 데 없는 백성을 모아 보살피도록 했다. 1406년에는 동녀(童女) 수십 명을 택하여 맥경(脈經)과 침구법(針灸法)을 가르쳐서 부인의 질병을 전문으로 치료하도록 했는데, 이것이 의녀(醫女) 양성의 시초이다. 1409년에는 별좌(別坐)를 두어 귀천을 가리지 않고 병자를 치료하게 했고, 1412년에는 개천(開川) 작업에 동원된 역군들이 병이 있을 때의 전의감·혜민국과 함께 약을 지어 치료하게 했다. 처음 설치될 때 지원사(知院事)·영(令)·승(丞)·주부(主薄)·녹사(錄事) 등의 관원이 있었고, 1414년에는 지원사·승·부령(副令)·녹사·부녹사 등이 있었다. 1460년(세조 6)에 혁파되어 혜민국에 합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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